일기를 작성하지 않게 되는 이유. 최근 들어서는 일기를 적어도 당시 상황을 묘사하거나 내 상태가 어땠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표현을 하지 않게 되었다. 왜 그럴까를 사실 생각해보면, 과거처럼 내 안에 있는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기 위해서 깊이있게 내려가야할 이유도 없어졌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남에게 꺼내지 못해 유일한 친구가 일기였던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내 최근 삶은 정말이지 만족에 가득차있다. 사람이 정말 행복하고 만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그 힘든 것을 나는 해내고 있다. 내가 성공했기 때문일까? 내가 이루고 싶은 일들을 모두 이루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을 지 언정, 미래만 보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충분히 알아차릴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미래도 사실 계획대로 되기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내가 희망하는 미래라는 것은 사실 살아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뭐 어떠랴라는 생각이다. 언제는 원하는대로 되던 것이 있던가? 그저 계획을 세우고, 희망을 그리면서 현재 살아가며 바라볼 자신의 시선만을 수정해나갈 뿐이다. 내가 살고 싶어하는 삶과, 현재 삶의 괴리는 어디에서 오고 있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이미도 만족스러운 삶을 조금더 만족스럽게 나아갈 뿐이다.
일기라고 하면서 사실 나는 근황에 대해서 작성하는 것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조금 하고 싶다. 나중에 이 블로그에 얼마나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하자면, 지금의 삶은 phase 3 정도에 해당하는 중요한 변곡점에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유학을 하던 학창시절의 phase1, 지인들과 특별한 사업을 하던 phase2, 군대를 마치고 사회에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지금의 phase3.
phase1 때도 역시 나는 일반적인 한국 학생의 루트를 밟지는 않았다. 엘리트 코스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 시기는 나에게 "상식"밖의 사고를 할 수 있는 한 계기를 열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phase2는 혼란스러움이었다. 처음 사회로 나가 일을 배우고 뭔가를 하고 있는데, 사실 뭘 하는 지도 모른 채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싸우기도 많이 했다. 이 시기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나도 힘들어서 성격도 많이 바뀌고 이상향만을 바라보던 성향에서 현실이라는 것을 조금 보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phase3는 무엇일까? 현재까지는 그늘에서 빠져나와서 세상은 원래 이렇게 밝고 따뜻한 곳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담담함. 뭔가를 바라볼 때 선과 악의 개념보다는 상대적인 상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며 절대적인 본질을 인식하며 살고자 한다.
phase3는 그 이전 단계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데, phase1이 삶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phase2가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튜토리얼을 나에게 경험하게 해주었다면, phase3라는 것은 이제 진짜로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편으로 두렵고, 흥분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phase2에서의 그 억압되고 힘들었던 시간이 응축되고 응축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무겁고 값진 시간인지를 계속해서 인지한다.
좋은 사람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우며, 그 관계를 유지하기란 얼마나 많은 지혜와 배려가 필요하며, 자신이 계획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성실함과 전략이 필요하며... 사실 이러한 많은 것들을 해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동화된 시간관리와 업무생산성 높이기, 체력관리 등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렇게 목표지향적으로 나아가다가도 최근에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현재에 다시 돌아와 삶을 즐긴다는 것을 누려본다. 단지 생각의 전환을 할 뿐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과연 당연한 시간인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어떠한 선택이었는가?"
그렇게 과거를 되돌아보고,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면 지금의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은 바로 내가 만든 것임을 느낄 수가 있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은 내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살아가는 내 삶은 바로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삶인 것이다.
무엇을 그리도 간절히 원했던 것일까?
사람들과 평범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대화하면서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것.
사랑하고 또 사랑받을 수 있는 것.
특별하게 생각하고, 특별하게 여겨질 수 있는 것.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며 성장하는 것.
자신이 살고 싶은 미래를 위한 기술을 익히면서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
미래를 상상하고 현실로 이끌어내기 위해 계획하는 것.
앞에 놓인 어려움들의 발견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
가끔은 그냥 창밖을 바라보면서 고요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것.
밤에 일찍 자더라도 죄책감이 들지 않을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열거해보자면 지극히 평범한 것들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사실 어려운 일들도 아니다.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지만, 그게 사실 많이 어려웠다. 당장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해결되어야 지금의 삶을 누릴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잠잘 때마저 생각을 놓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매우 심플한 삶을 살고 있다. 더 복잡한 일들을 구태여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 성격 상, 돈을 벌고 여유가 더 생기면 나는 아마 더 새로운 것들을 하겠다고, 배우겠다고 모험을 떠나겠다고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해야하는 것이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과의 균형점을 잘 찾는 것이 그래서 참 중요한 것 같다. 과거의 나 같았다면, 나는 또 훌쩍 어디론가 떠나버렸을 지도 모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찾고 참아야 하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이제는 조금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
욕심을 부려도 한꺼번에 부리면 체하는 법이다. 지금의 행복을 곰국 끓이듯이 오랫동안 끓여서 완전히 내 삶에 녹아들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서 나중에 간이 심심하면 소금을 넣어도 좋고 후추를 넣어도 좋고 대파를 썰어넣어도 좋다. 지금은 phase3의 극초반 단계이므로, 이 페이스를 상당기간 유지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기르고 추후를 도모하는 것이 기반을 닦기에 좋을 것이다.
일기를 작성하지 않게 되는 이유라고 해놓고서는 말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최근 들어서 일기라는 것을 상당히 쓰지 않았었다. 지금의 나를 이토록 성장하도록 한 것은 일기쓰기라는 것에서 왔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내 안의 혼란스러움을 잠재우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으로써는 그러한 혼란스러움이 사라지니 일기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일기란 본질적으로 기록이 아니겠는가? 세상에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와 같이 조금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기록을 남기면 좋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세상엔 이런 또라이도 있구나 라고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효용성 이전에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시간 그 자체가 상당히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의무는 아니더라도 시간이 나면 하루하루 있었던 특별한 시간들에 대해서 기록을 해볼까 싶다. 비슷한 하루하루 같지만 돌이켜보면 같은 날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일기를 쓰면서 수없이 확인했기 때문이다.
까맣게 다 쓰고서 찢고 태워버린 일기장만 지금까지 십수권인데, 그때마다 후련했고 그때마다 후회했다. 지금으로서는 과거의 글을 생각해보니 기록의 용도보다는 배설물에 가까워서 잘태워버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번에는 일기장이라는 의미를 새겨서 값진 시간의 기록을 남겨보면 어떨까 싶다.
이러한 생각도 역시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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