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유학을 위한 준비를 거의 마쳤다. 몇 가지 서류를 영문으로 떼야 하는 것이 있어서 동사무소에 다녀왔다. 서류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건물들과 나무들과 참새들과 하천의 물이 흐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에는 의식적으로 보려고 해도 마음에는 들어오지 않는 풍경이었다. 과거 일을 하면서는 누릴 수 없던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었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하고,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해가 떨어지고 날이 져도, 나는 잠들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것은 기존의 나라고 알던 자신을 죽이고 다시 개조하는 과정이었다. 그 결과 긍정적인 면도 얻었지만,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했고 다양한 부작용을 얻게 되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세상을 매우 아름답게만 보는 천방지축의 맑고 투명한 아이였다. 하루의 대부분을 웃음으로 지냈고, 인간관계와 환경에 대해서 만족스럽지 않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서 모두와 원만하게 지내고 주변도 긍정적인 아우라를 번지도록 하는 그런 해피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러한 행복감이 모두 현실에 기반한 것들은 아니었다. 삶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세상을 아름답다고만 여기는 환상에 기반한 행복이었다. 그러니 일을 하면서 겪게된, 다양하고도 특수한 사건들의 연속 속에서 나의 투명한 마음은 쉽게 깨져버리기 일쑤였고, 삶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던 만큼, 현실을 인지하면서 느끼게 되는 절망감도 누구보다 컸었다.
그런데 조금씩 현실을 마주하고 자신의 부족함들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눈물도 적어지고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한 줄의 문장으로 그 많은 사건들을 축약하기에는 참 다산다난한 일들이었다.
사람이 성장을 하면서 반드시 겪어야 할 현실인지라는 것은 생각하고 계획하는 힘을 길러줬고, 인간관계라는 측면에서도 피상적인 단계를 넘어서 미래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부작용이라 함은 과거 가지고 있던 순수함의 가려짐이라는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여지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여러해 잊고 살았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항상 그때의 순수하게만 바라보던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서류를 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게 되었던 가로수들과 그 사이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참새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그 중에는 이 겨울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이생을 끝내게 된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통통 거리며 왔다갔다하는 모습은 우리의 눈에는 귀엽지만, 어쩌면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먹이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한편, 그러한 이들 또한 그러한 현실 속에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니, 가엽기도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라는 생각도 들었다. 현실이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의미할 뿐이지, 굳이 추하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삶에 여러 어려움도 있기 때문에 그들도 이렇게 몰려다니는 것이고, 귀중한 경험과 추억도 쌓이는 것일 터였다.
과거에는 아름다운 환상을 보려했지만, 지금은 현실이라는 공간에 발을 들여놓고서 다만 현실 속에 주어진 실제 아름다움을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완벽하게만 보이던 사람도 가까이 가면 부족한 점이 보이게 마련이지만, 사랑한다면 부족한 점까지도 모두 사랑스럽게 바뀌는 이치일 것이다. 힘듦이라는 것에 가려서 과거에는 볼 수 있었던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도 조금씩 적응하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겨나니 삶에 대한 사랑이 다시금 피어오르는 것이다.
물리적인 시공간에 의한 제약이 적은 만큼 사색의 시간은 늘어날 수 밖에 없고, 깊은 사색은 일반적으로는 볼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삶의 다양한 차원을 바라보도록 도와준다. 사람은 환상 속에서만 빠져있어도 안되고, 목표라는 것에만 빠져도 안된다. 목표라는 방향성을 가지되, 삶에서 주어지는 달콤한 열매들을 충분히 맛보고 즐겨가며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영혼에 값진 보물들을 쌓아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제 나에겐 다만 그러한 열매들을 맛보고, 보물들을 쌓아가는 시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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