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만들어놓은 음식이 없었다.
과거라면 미역국이라도 끓여놓으셨겠지만,
최근에는 많이 바쁘셔서 준비할 새가 없다.
내가 삼식이는 아니지만,
밥을 먹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이 나이되도록 나는 배고픔이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느껴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부모님께서 가난하게 배고프게 자라오셨기 때문에
당신 자식은 그런 고생하지 않게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나는 주섬주섬 후라이팬을 꺼내고, 있는 재료들을 어떻게 적절하게 섞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를 궁리하게 되었다.
무진장 배가 고파 못해도 30분 안에는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만들어진 소스와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온갖 양념장과 스파게티면과 마늘, 번데기와 골벵이 등을 넣고 괴상한 음식을 만들어냈다.
무슨 조합인지 다시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조합이다.
맛은... 상상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만들면서 조금씩 집어먹다보니, 막상 요리를 다 만들고 났을 때는 배가 불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 조절도 실패다.
그러나 맛있게 먹었다.
누군가에게 내놓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실험체로 할 만큼의 용기는 있어서
과정도 결과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음식을 먹으면서 나는 삶을 살아가고 배워가는 과정이라는 것도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떠먹여주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이 알아야 해서, 배가 고파서, 해결해야 해서, 추워서, 뭔가를 해야 해서 하는 "필요에 의한 공부"라는 것이 꼭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필요가 너무나도 쉽게 충족되는 나머지, 기본적인 배움의 기능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 앞에 많은 재료들이 주어지더라도
떠먹여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
잠시나마 그냥 한국에 남아 가족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면 가장 편안하고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고생을 사서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조만간 정리가 되었다.
나는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고, 이것은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되었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찾아가고, 공부하고, 구매하고 충족해나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 과정 자체가 만족스러움이고 성장이고, 진정한 안정감이고 편안함으로 궁극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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