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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ain/Yin-Yang

시간과 공간, 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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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존재론적 집합표상에 있어서 시간은 직선적 시간관이다. 만일 현재가 폭 (幅)을 가진 시간이라면, 그것은 즉각 과거와 미래로 분할(分割)된다. 그러나 과거나 미래는 실재(實在)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현재라는 시간이 폭(幅)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제로(zero)이므로 실재(實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결 국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사물의 변화의 리 듬을 추상한 것을 구체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추상의 카르마이다.

그러면 시간의 진정한 모습이란 무엇인가. 시간이 실재하지 않는데도 불구 하고 모든 사물들의 변화의 리듬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일정한 상관관계에 있 다는 것은 대단한 신비(神秘)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세계의 연대성을 발현 이다. 나아가 세계는 항상적으로 야기되는 새로움의 분출(噴出)이다. 무한히 야기되는 새로운 질(質)의 생성(生成)이야말로 세계의 모습이다. 이러한 생성 의 모습은 세계가 기존의 존재의 속성으로 화원(還元)될 수 없는 어떠한 역 동성(力動性)의 실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동성은 전일적 (全一的)이고 연대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이처럼 생성을 야기하는 창 조적(創造的)인 역동성(力動性), 이것이 바로 시간의 본래의 모습이다. 모든 사건에 발현되는 연대적인 역동성을 우리는 시간으로 재규정한다. 세계는 창 조적 역동성의 기동(機動)이다.

이에 대하여 사건은 또 다른 측면이 있으며, 그것은 모든 사건이 수많은 다른 사건들과의 총체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들은 연장적인 존재 의 차원에서 하나의 통일된 연대성을 형성한다. 이러한 총체적(總體的)인 관 계장(關係場)을 우리는 공간이라고 규정한다.

존재론적인 집합표상에 있어서는 세계의 역동성(力動性)을 파악하지 않고 역동성의 리듬을 시간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역동성 자체는 존재의 한 속성 (屬性)으로 간주한다. 한편 존재들이 형성하는 관계들의 총체(總體)는 규정되 지 않고, 존재들을 모조리 사상(捨象)함으로써 존재와는 독립된 순수한 거리 로 형성되는 허공(虛空)이 그 실재성(實在性)을 획득한다. 그러나 그러한 공 간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세계는 꽃밭과 같은 것이다. 그곳에는 역동성(力動性)으로서의 시간이 총체적 관계장에 무한한 구체적 모습의 사건의 꽃으로 피어나고(機動 하고), 다시금 꽃이 지듯이 무형의 역동성으로 회귀(回歸)하는 것이다. 그것 은 시간이 피어나고 공간이 스러지는 모습이다.

2. 음양(陰陽)

이제까지의 논의는 사실은 동양의 세계관적 집합표상을 서구적 언어로 해 석한 것이다. 창조적 역동성(力動性)으로서의 시간은 바로 동양적 집합표상 에서 하늘(天), 양(陽), 무(無), 인(因)의 이미지이다. 한편 총체적 관계장(關係 場)으로서의 공간은 동양적 집합표상에서 땅(地), 음(陰), 유(有), 연(緣)의 이 미지이다.

동양의 철학적 집합표상에 있어서 세계는 하늘(天)과 땅(地)의 교류로 규 정된다. 그것은 무한한 조화를 함축한 하늘(天)의 무형적 역동성이 땅(地)의 총체적 관계장에 출현하는 것이며, 존재적 관계장으로서의 땅(地)이 모든 사 물들을 품어 안고 기르고 다시 하늘(力動性)로 돌려보내는 세계인 것이다. 그 것은 창조적 역동성이 기동(機動)하여 총체적 관계장을 만나 사물(事物)로 실현되고, 총체적 관계장의 정합성(整合性)이 역동성을 깨워내어 생성변화(生 成變化)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양철학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는 주역 (周易) 계사전의 제1장은 하늘(天)과 땅(地)이 정위(定位)하고 그 교류에 의하 여 변역(變易)이 이루어진다는 진술로 시작한다. 중요한 문제는 동양철학의 범주(範疇)들이 서구철학의 어떠한 범주에 대응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왜 하늘과 땅이 가장 기본적인 철학적 범주(範疇)로 등장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론적 집합표상과는 전혀 다른 하늘과 땅의 연대성이 그들의 세계 에 대한 집합표상이었기 때문이다. 천지(天地)가 바로 자연(自然)이었던 것이 다. 그리고 천지(天地)의 철학적 추상화(抽象化)가 바로 음양(陰陽)이었다. 그 리하여 동양의 세계관은 그 기원에서부터 존재론적 집합표상이 아니었다. 그 리하여 서양의 철학이 존재의 탐구나 궁극적 실재에 몰두한 데 대하여, 동양 철학에서는 아예 존재론이 없다. 그리고 창조적 역동성과 총체적 관계장의 범 주와 변역의 범주들이 그 내용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역동성과 관계장을 무(無)와 유(有)로 규정하였다. 그의 무 (無)와 유(有)는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다. 무(無)는 '시작한다' 의 이미지로 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태가 아니라, 근원적(根源的)인 역동성(力動性)의 이미지이다. 한편 유(有)는 '어머니'의 이미지로서 존재의 이미지가 아니라 일체를 포용하는 무한한 관계장(關係場)의 이미지였다.

불가(佛家)에서는 역동성을 인(因)으로, 관계장을 연(緣)으로 규정한다. 불 가의 세계는 연기(緣起)이며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규정한 사건(事件)의 개념 과 동등하다. 또한 연대성은, 개개의 부분에 전체가 반영되고 전체는 모든 부분의 연대성으로서의 인드라 법망계(法網界)의 비유로 나타난다. 연기법 (緣起法)은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부정이다.그리하여 인간과 삶에 대하여 연기 법은 바로 자신을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카르마가 야기 하는 무명(無明)에 빠지지 말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우주적 연 대성에서 자신의 위상(位相)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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